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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근황

한국의 시각에서 본 법의인류학과 개인식별

법의학 (혹은 법과학)은 본디 사건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실제적인 필요성에 의해 도입되고, 발전해 온 학문 분야이다. 이에 비해 생물인류학은 생물로서의 사람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궁금한 점의 해소라는 학문 본연의 성격이 뚜렷하다. 일견 공통점을 확인하기 어려운 학문 분야들로 서로 구분되어 제각기의 위치에 있었다.  

학술적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개념과 전통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문이 발전하고 사회 환경이 변함에 따라 해당 분야 역시 새로운 경향을 띠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법의학과 생물인류학이라는 서로 달리 발전해 온 분야도 만나 법의인류학으로 발전하였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법의인류학 (Forensic Anthropology)이란 현장에서 수습한 인골에 대한 인류학,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범죄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성립되고 발전한 생물인류학의 한 분야인데 그 작업의 범위는 범죄와 관련된 현장조사 뿐 아니라 전사자 유해의 수습, 고고학 발굴현장에서의 작업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

법의인류학의 실제적 적용에서 가장 중요한 법의학 기법의 하나가 현장에서 유해가 발견될 때 사망자의 신원과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한 작업으로 이를 개인식별 (Personal Identification) 기술이라 한다. 이 기법은 법의학자가 육안적 혹은 유전적 기법을 이용하여 성별, 나이, 신장 등 체질적 특징과 병리적 소견의 유무,  유전적 프로필 등 다양한 정보를 얻는 것으로서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는 사망자를 특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개인식별기법 중 유전학적 기법은 21세기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사회적으로 큰 기여를 하는 응용과학으로 존중받으며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법의학과 개인식별작업은 시간이 갈수록 서로간에 많은 학술적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한편 한국의 법의인류학과 개인식별작업은 처음 도입되었을때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 없었고 지금도 전공자가 그렇게 많다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지난 몇 십년 간 관련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이제는 상당한 수준의 연구 성과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작업에 있어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는 특히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7년 처음 설립된 이후 본 연구소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한국에 법의학이 정착하여 발전하는데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사법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궁극적으로 사회의 합리적 법질서 유지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법의인류학 및 개인식별에 대해 많은 한국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본 연구소와 인연을 가지고 한국적 환경에서 다양한 업적을 내는데 성공한 연구자들이 그 동안 한국의 사건 현장에서 축적한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Forensic Anthropology and Human Identification on the Cases of Korea 라는 제목의 책을 함께 준비하여 완성된 것이다. 본서에는 국내외 관련 저명 학자들이 참여하여 집필한 법의인류학 관련 챕터가 망라되어 있는데 현장조사에서 유해감식, 얼굴복원, 전사자 신원확인, 유전학적 검사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법의인류학 분야의 연구를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특히 서울의대 법의학연구소는 연구 자체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권에 대한 관심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새로운 융합적 발전을 이루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였는데 그 고민의 성과도 이 책에 반영되었다. 따라서 독자들께서는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그치지 말고, 저자들이 현장 활동에서 고민하고 확인하고자 하였던 대상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관심을 갖고 살펴봐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전세계적으로 법의인류학과 개인식별에 대한 책은 지금까지 많이 출판되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해당 분야 연구자들이 한국적 조건에서 저마다 부딪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축적하고 경험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해당 주제를 기술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나름의 학술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지금까지 한국의 법의인류학과 개인식별 기법의 발전 성과를 정리하고 다가올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뜻이 있으며 이 분야 연구가 한국에 처음 싹을 틔우고 자라 이제는 그늘이 있는 나무로 충분히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의의도 있다 할 것이다. 

본서가 출판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문적 법의학연구를 위해 특화된 연구소가 대학에 설치되어 이를 토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진심이었던 사람들이 사람 자체가 중심이 된 인류학적 스토리를 법의학적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이 풀어내고자 하는 본 연구소의 시도에 많은 분 들이 헌신적으로 공감하여 작업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책 발간까지 열정적으로 참여해주신 저자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성과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책임편집자 이숭덕,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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